[활동이야기]미국 어학연수 기행문 수상자(1학년)

관리자(김수미)
2019-11-29
조회수 44


지난 9월, 10월 두 달간 1학년 학생들은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 

학교로 다시 돌아온 학생들은 바로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즐거웠던 추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기행문을 적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한주애, 이건아, 변성현, 3명의 학생이 수상을 했는데요,

학생들의 글은 예쁘게 코팅을 해서 모든 학생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놨습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으시면서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어떤 것을 배우고 돌아왔는지 감상해 보시죠.^^






변화

한주애



  항상 숙소만 나가면 다른 내가 된다. 숙소에 있을 때는 노래 부르고 장난 치고 시끄럽게 떠들지만 숙소만 나가면 조용해지고 눈치를 봤다.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고 이해가 안됐다.

  어학연수로 미국에 가게 되었다. 처음 가는 미국이여서 들뜬 마음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알차게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똑같은 스케줄과 친구들의 잦은 싸움으로 인해 나는 지쳐갔었다. 미국에 와서 한 달이 지날 때 쯤 나에게 한계가 왔다. 링컨에 있었으면 이쯤 되면 외박기간일 것인데, 그러면 나는 항상 외박만 보고 참고 참아서 외박 때 집에 가서 마음을 리프레쉬하고 학교에 돌아와서 조용히 마대로 풀었다. 왜냐하면 나는 싸우는 게 싫어서였다. 말싸움해도 어차피 말도 빨리빨리 안 나오고 흥분하면 더더욱 그래서 질 싸움 안하는 게 낫다는 생각과 뒷담 까일 것 같은 생각에 화가 나는 일이 있거나 섭섭했던 거 상처 받았던 거 혼자 묻어놓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똑같이 그러고 지냈었는데, 아직 한국에 가려면 한 달이나 남아있는 상태여서 무척 힘들었다. 선생님께 찾아갔는데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진짜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자기표현을 해라, 사람들은 그런 자기표현 안하는 애들 착하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무시하게 된다고 하셨다. 성격이 특이하고 많이 드러난 애들한테는 미운 정 든다고 하셨다. 하지만 너는 계속 숨기고 있으니까 앞으로 자기표현하고 자기가 한 행동은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이제 싸움을 피하지 말고 부딪히고 자기표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한 달 더 지내는 동안 많은 친구들과 부딪혔다. 싸울 때 화난 거 표현하고 나중에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마대로 잘 풀었다. 그리고 싸울 때 마다 그 친구들과 또 주변 아이들에게 내 모습이 많이 드러나고 선생님과 교제하면서 내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떤 친구와 진짜 크게 싸웠는데 그때 실비아 선생님께서 교제를 해주셨다.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은 화가 나거나, 친구와 싸우면 혼자 속에서 참고 참고 그러다가 화병에 걸리고 귀신에 들린다고 했다. 그러다 자살까지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올라오는 생각을 다 받아준다고 했다. 나는 그 전까지 실비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내 속을 꿰뚫어 보신 것처럼 다 맞는 말만 하셨다. 내가 올라오는 생각을 구별 안하고 다 받아주었었는데 그러다 큰일 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 지내면서 내가 많이 드러났다. 먼저 나는 조용히 지내던 애가 갑자기 숙소에서 하던 대로 행동하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했다. 나는 한주애라는 사람을 계속 유지하려고 참고 지켜왔는데 이번에 교실에서 크게 싸우면서 지금까지 지켜온 한주애가 깨졌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감출 것이 없어졌다. 처음에는 미국 생활이 너무 힘들고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지만 이 이을 통해 나는 정말 자유로워지고 그 이후 나는 정말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선생님과 이 일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이건아



  세계 중심의 도시 Timesquare와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 아... 얼마나 기대되나. 링컨 학생들과 나는 8월 29일부터 10월 27일까지 2달 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미국에 갔다.

  미국 가는 목적은 두 달 동안의 영어 공부였지만 여행이 나의 마음에 가장 많은 차지를 했다. 미국 생활 2달 동안 나에게 미국와서 2주와 미국 떠나기 전 2주가 나의 마음이 가장 변했던 시기였다. 처음 일주일은 진짜 죽을 것 같았다. 하루가 일주일 같았고 일주일이 한 달 같았다. 하루가 너무나도 바빴고 잡생각 할 틈도 없었다. 잠자리에 들면 바로 잠이든 건 미국생활 때가 처음이었다. 너무 바쁘다보니 몸도 마음도 힘들고 지쳐 부모님을 너무 많이 찾게 되었다. 어떻게 2달을 보내지란 마음이 컸다. 그리고는 2주가 지나 조금 적응이 될 무렵 부모님께 전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는데 펑펑 울며 전화통화를 마쳤다. 부모님께서는 네가 성숙해가는 과정이라며 단어 시험 꼭 통과해서 관광 나가라며 격려했다. 10분 동안 통화했는데 정말 시간이 물 흐르듯 지나갔다. 통화를 할 수 있는 거에 대한 감사함이 많이 느껴졌었다. 통화를 하면서 묵묵히 응원해주고 아낌없이 지지해주는 부모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나서의 미국생활은 엉망진창이었다. 수업시간에는 졸고 숙제는 제때하지 못하고 단어 시험은 계속 컨닝하고 온통 머릿속에는 ‘부모님’과 ‘집 가고 싶다’라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다 현숙선생님께 금지용품과 돈 200달러를 들키게 되어 교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단지 화가 나고 변명하기 바빴다. 하지만 얘기하다보니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알게 되고 사소한 것 하나도 괜찮다 라는 생각이 내 마음에 너무 크게 잡혀서 내 생활도 잘 못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절제하는 법을 배웠고 나는 포기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달리 먹으니 내 생활이 점점 잡혀갔다. 과제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단어시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열심히 했다. 그래서 인가 마하나임 생활이 즐거웠다.

  미국 떠나기 전 2주는 Team project가 정말 많았다. Mind lecture랑 Useful expression을 사용해서 연극도 만들어야 했다. 준비할 시간도 너무 없었고 모둠원과의 충돌도 잦았기에 준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팀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하는 것을 보니까 우리팀도 승부욕이 생겨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진도가 쑥쑥 갔다. project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우리 팀은 서로 끈끈해졌고 성취감을 느꼈다. 팀과제를 하면서 많이 배웠고 서로 더 알아가고 의지하며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을 했다. 팀과제를 내는 이유는 단지 성적이 매기거나 우리 과제를 늘리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팀과제를 내주신 선생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선생님 중에서 Margie 선생님이라고 계신다. Useful expression을 가르치신다. 아이가 3명이나 있다. 그래서 점심 먹을 때도 저녁 먹을 때도 아이들 먹이느라 밥도 제대로 못 드신다. 아이들 챙기기도 바쁘신데 항상 수업시간에 마음 써서 준비하시고 관광도 같이 가 우리를 가이드 해주셨다. 그래서 선생님께 한편으로는 죄송했고 또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Margie 선생님뿐만 아니라 마음 써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토요일마다, 마지막 일주일 동안 관광하면서 미국문화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미국 사람들이 문이 닫히면 항상 문 잡아주고 길가다가 조금만 부딪혀도 “sorry” 또는 “excuse me”를 했다. 매너가 몸에 배겨있어 너무 좋았다. 또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상관없이 꾸미는 미국 사람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마지막 날 놀이공원(six flags)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놀이 공원 직원 분이랑 얘기를 많이 하면서 살짝 안심이 되었다. 길 잃었을 때 무섭긴 했어도 많은 것을 얻었다. 핸드폰 없이 위기를 대처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잊지 못 할 추억을 만들어준 이모, 선생님들께 감사했고 행복한 기억을 남겨준 링컨에게 너무 고마웠다. 링컨 덕분에 미국에서 생활도 해보고 링컨을 들어온 것은 나의 신의 한 수 였다.






감사함으로 가득했던 마하나임


변성현


  나는 이번에 링컨 학생들이라면 필수코스라는 미국 마하나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처음에 링컨에 들어와서 미국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미국에 마냥 놀러가는 건줄 알고 빨리 미국에 가는 8월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링컨 선배들에게 마하나임 생활에 대해 듣고 난 후부터 미국에 가는 게 두려워졌다. 왜냐하면 선배들이 미국 스케줄이 엄청 빡세고 단어시험도 하루에 100개씩이나 쳐야하고 게다가 통과를 못하면 관광을 못나간다는 게 너무 불안하고 두려웠다. 이런 별로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미국에 가는 비행기에 탔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아직 미국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버스를 타고 마하나임에 가서 짐을 푸는데 아침체조부터 씻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10분밖에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아...이제 진짜 마하나임 생활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나중엔 기상시간을 앞당기고 아침체조를 없애서 아침시간이 그렇게 빡세진 않았다. 그리고 첫 주차 때 사모님과 모임을 가졌었는데 그때 사모님께서 “난 너희랑 좋은 유대관계를 형성할 생각이 전혀 없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사모님에게서 내 마음이 아주 멀어졌다. 그리고 ‘굳이 저렇게까지 말해야 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모님의 말을 그렇게 하셔도 마음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게 느껴진다. 아무튼 우리는 마하나임에 적응하기도 전에 Dear. Neighbor를 하러 갔다.

  Dear. Neighbor는 미국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칸타타 티켓을 동네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칸타타 홍보를 하는 것인데 교회 전단지 같은 건 링컨 오기 전에 제주교회에서도 많이 해봤기 때문에 까짓것 얼마나 걸리겠어? 이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양이... 예상을 뛰어 넘어서 너무 많았다. 내 파트너가 잔꾀를 많이 써서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ㅎ 하는 동안은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어깨가 빠질 것 같고 팔도 너무 아팠다. ㅠ 표를 돌릴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나중에 미국 칸타타를 보고나서 하나님께서 이 큰 공연을 위해서 나를 작게나마 쓰셨다는 게 너무 감사했고 그 수많은 관객 중 나한테 표를 받고 온 사람도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들어서 뿌듯했다. Dear. Neighbor를 다 끝내고 다시 마하나임으로 돌아왔는데 시차적응은 Dear. Neighbor를 하면서 이미 다 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힘들 진 않았다. 그러나 날 정말 힘들게 한 개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단어시험이었다. 하루에 백 개를 치는 것도 생전에 처음인데 단어 목록 중 80-90%가 생판 모르는 단어들이어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단어가 어려운 것도 어려운거지만... 내 마음을 정말 힘들게 한건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계속 패배하는 내 자신이었다. 나는 분명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단어가 외워지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쉴 때, 놀고 싶고 떠들고 싶은 거 다 참고 혼자 단어장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꾸역꾸역 외우는데도 결과는 fail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외워도 못하는 것을 겨우 몇 시간 공부한 다른 친구들이 척척해내는걸 보면서 ‘다 하는 걸 난 왜 못하는 거지? 난 뭐가 문제인거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고 나는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나를 옭아맸었다. ’내가 단어 외우는 방법이 잘 못 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선생님들, 친구들에게 각자 단어 외우는 방법을 물어보고 그대로 따라 해보기도 하고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했었다.

  그렇게 결국 단어를 한 단계를 낮춰서 외우기로하고 A반에서 B반으로 내려갔다. 솔직히 B반으로 내려가면 단어가 더 쉬워지니까 B반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바꾸게 되니까 ‘조금만 더하면 A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부담스러운 일을 피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계속 이야기 하시는데 내가 이번에 B반으로 내려가면 부담스러운 일을 피해 버리는 게 되니까 내가 B반으로 내려가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도움닫기라고 생각하라고 하셔서 잠깐 뒤로 빠졌다가 다시 A반으로 뛰어나가기 위해 B반으로 내려갔는데... 다시 A반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사모님이 계속 B반단어 하라고 하셔서 결국 끝까지 B반단어를 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공부도 시켜줄 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추석 때는 윷놀이도하고 댄스타임도 했었는데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즐겁고 행복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아무 감정 없이 지나쳤을 시간인데 마하나임에 있어서 그런지(?) 그런 사소한 시간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에 가는 투어에서 자유의 여신상도 다녀왔는데 자유의 여신상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이라서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태권무 공연을 했을 때는 우리가 감사패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력도 너무 부족하고 그런 자리에서 공연을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인데 그 자리에서 공연을 하고 감사패까지 받아 올수 있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힘을 주고 주먹을 날리는 게 끝까지 되지가 않아서 그 점이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마하나임의 프로그램을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사모님과 모임을 가지는데 겉모습만 보면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또 우리를 귀찮은 마음이 아닌 정말 마음으로 사랑을 주시며 우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께 그리고 맛있는 밥을 삼시세끼 만들어 주시고 관광 나갈 때 배고프지 않게 도시락까지 챙겨주신 식당 이모들께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떠날 때까지 마당에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 모습을 보며 너무 감사했고 또 한편으로는 죄송했다...ㅎ 마하나임 후에 일주일 동안의 동부투어도 너무 재밌었다. 우릴 위해 밤새서 운전을 해주신 삼촌들께도 너무 감사했다.

  빈 마음으로 미국에 갔는데 돌아올 땐 마음에 양손가든 감사함을 푸짐하게 담아왔다. 비록 미국생활하면서 멘탈이 흔들흔들할 때도 있었고 여러 가지 고비들도 있었지만 사모님과 선생님들의 품안에 있었기 때문에 잘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받은 이 감사함 들을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주고 싶다. 그리고 후배들도 이번에 부링오면 내년에 미국에 갈 텐데 그 아이들도 마하나임에서 내가 느꼈던 감사함 들을 똑같이 느끼고 마음을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서 한국에 돌아오면 좋겠다.